브로커가 되는 방법?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의 전당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긴장과 설렘 사이
불안한 마음과 달리 기차는 정각에 맞춰 부산에 도착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리허설을 하고 업무를 숙지하는 날이었다. 중요한 날인데다 모두가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첫 날이라서 늦지 말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났다. 부산역은 버스 정류장이 넓게 퍼져있어서 탈 수 있는 버스와 그 버스가 오는 정류장을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 미션이 있다. 예를 들어 가까운 거리에 10분, 먼 거리에 5분, 중간 거리에 3분 후 도착하는 버스가 있다고 해보자. 이때 3분이 가장 빠르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움직였다가는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에 버스가 이미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때 다시 다른 정류장으로 이동하면 같은 이유로 지각은 확정이다. 역 근처라 늘 도로가 막히고 배차 간격이 넓은 브로커가 되는 방법? 것도 고려해야 하는 사항 중 하나다.
다년간의 여행과 영화제 탐방으로 생긴 노하우를 종합해 머릿속으로 치열하게 계산을 굴렸다. 다행히 계획이 맞아떨어져 한 번에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 늘 막히는 도로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답답함도 잠시, 극장에 가까워질수록 거리에 붙은 영화제 포스터와 현수막의 간격이 촘촘해졌다. 옳은 방향이 맞으니 어서 오라는 신호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아직 관객들이 들어오지 않은, 준비로 혼잡한 극장에 들어가는 순간엔 가슴이 두근거렸다. 늘 호기심을 자극하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이 극장 전체가 되고, 바로 그 안에 내가 있는 특별한 기분이었다. 설렘과 긴장이 뒤섞여 흘렀다. 분주하게 오가는 스태프들 사이로 무거운 캐리어를 구석에 세워둔 채 숨을 돌렸다. 빠르게 달린 기차만큼이나 모든 것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예정된 순서대로 청년기획단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각자 맡은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함께 모인 팀원들 모두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도 없어서 상영관의 조명은 어디서 끄고 켜는지, 입장하는 문과 퇴장하는 문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여는 것인지 사소한 것부터 배워나갔다. 빛과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 영화에 집중하기 위해 많은 것을 덜어낸 공간인 만큼 사람이 직접 신경써야 하는 일이 많았다. 이렇게 엄격한 브로커가 되는 방법? 환경에서는 베테랑도 긴장을 하며 실수할 것 같은데, 오늘 처음 배운 우리가 정말 할 수 있는 게 맞을까. 친절한 스태프들과 달리 엄숙한 상영관은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물론 상영관마다 담당 매니저가 있고, 그가 총책임자다. 다만 우리는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한 만큼 책임감이 막중했다. 사고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크고 작은 실무들을 직접 해내야 하는 것.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미리 프로그램의 설명이 담긴 피피티 화면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마이크와 소품을 점검하고, 상영 중간에 쉬는 시간을 공지하고, 게스트들이 오면 브로커가 되는 방법? 안내하는 등등의 일이 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일이 많아 각자 구역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수시로 핸드폰을 확인하는 것도 잊으면 안 됐다. 계속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가 영화가 시작하면 쉬는 시간이 생길 줄 알았던 것은 오산이었다. 늦게 입장하는 관객이 브로커가 되는 방법? 있으면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해 좌석까지 안내를 해야 하고, 상영관 문이 안에서는 열리지 않아 미리 밖에서 대기를 해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정말 하나도 없구나. 해야 하는 일들을 계속 머릿속으로 정리해도 긴장만 더해갔다.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갑자기 마이크를 잡았다
하필 팀원 중에는 아직 학기 중인 대학생도 있어서 당일에 시험이 있으면 리허설에 불참하는 일도 벌어졌다. 인원수가 여유로워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리허설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어 혼란이 야기될 수 있었다. 총 5명 중 2명이 지각을 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심지어 팀 소개와 프로그램을 구두로 안내하기로 한 친구는 아예 리허설에 불참했다. 다른 팀원이 급하게 마이크를 잡았지만, 그도 지각을 하면서 앞부분을 놓친 터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경험이 있었던 내가 대신 마이크를 잡고 리허설을 소화했다. 원래 담당했던 팀원이 작성해둔 멘트가 있었지만, 현장 상황에 따라 수정해가며 몇 차례의 연습이 진행됐다. 갑작스레 대본을 쓰거나 무대에서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편이라 다행이었다.
정신없는 리허설을 마친 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팀원은 리허설의 진행 과정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원래 정했던 대로 자신이 다시 마이크를 잡을 계획이었던 것이다. 팀장까지 맡으면서 활동에 적극적이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리허설에 불참한 것이기에 그 친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복잡한 동선, 마이크 사용법, 기술팀과의 소통 등 리허설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바로 해낼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구두로 설명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직접 몸을 움직여서 연습해보면서 멘트도 다른 스태프들에게 컨펌을 받아야 했다. 이미 리허설은 끝났고 스태프들도 다른 업무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그 역할, 내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리허설을 하면서 기술팀을 포함한 수많은 스태프들이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볼 수 있었다. 기획에 참여한 우리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담긴 일이기에 문제없이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는 열망이 더욱 강해졌다. 리허설에 지각한 팀원이 많아 괜히 죄송하고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연습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팀원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리허설을 진행했던 내가 당일에도 멘트를 담당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기대하고 준비했던 역할을 못하게 된 팀원은 당연히 브로커가 되는 방법? 아쉬워했고, 나머지 팀원들은 양쪽의 입장이 이해가 간다며 난색을 표했다. 정말 난감했다. 팀원의 입장을 당연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프로그램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했던 터였다.
서로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언성이 높아지는 등의 갈등이 생긴 것은 아니나 양쪽 모두 물러서기 어려웠다. 그때 팀원이 영화 상영 전의 멘트만 자신이 하고, 쉬는 시간이나 상황 고지 등의 안내 멘트는 내가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상영 브로커가 되는 방법? 후의 순서들이 복잡한 것이지 이전에 하는 멘트는 연습 없이도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듣자마자 바로 흔쾌히 승낙을 했고, 좋은 방법이 나온 것에 안도의 숨을 돌렸다. 그리고 팀원에게 사과를 건넸다. 무엇보다 가장 속상했을 동료에게 일의 효율이나 진행을 우선한 것이 미안했다. 팀원은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미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미안하고, 부끄럽고, 소심한 날이 있다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만큼 쉽게 지워지지 않는 감정이 있을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갈등을 만들거나 미움을 받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편이다. 아무리 사과해도 상대방의 기분이 풀리지 않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나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에 괴로움이나 상처가 생기는 것을 상상만 해도 두렵다. 갈등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는 게 잊고 싶을 만큼 괴로웠고, 좋은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리지 못한 것도 자책이 컸다. 더불어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싶고, 그래야 한다는 책임감이 앞섰던 것이 멘트를 욕심낸 것으로 오인될 수 있어 속이 상하기도 했다. 참 소심한 마음이었다. 다른 이들이 정말 안 좋게 봤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오해해도 별 수는 없다는 걸 안다. 잘하고 싶어 발을 동동 굴러도 진심이 가닿지 않는다고 느껴진 날이었다.
사실 그 날은 내 생일이었다. 고맙게도 친구 한 명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와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연이은 리허설과 추가 회의로 이미 저녁 밥 시간을 놓친 후라 친구에게도 그저 미안한 마음이었다. 만나자마자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로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친구는 웃는 얼굴로 괜찮다며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매서운 바닷바람이 부는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머플러와 편지를 받는 순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당황한 친구에게 더 미안할 일을 만들어버렸다. 살면서 많은 일과 감정들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면역이 부족한 영역이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했다.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진심의 방향은 다를 수 있다
최근 칸에서 송강호 배우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2022)에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수진(배두나)은 일에 대한 열정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무신경한 형사다. 살가운 남편이 잠복근무 중인 아내를 걱정하며 갈아입을 옷을 가져온 상황에서도 반가운 기색 없이 쌀쌀맞다. (딱히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도 아니다.) 긴 외근이 이어지던 중, 수진은 아이를 낳고 버린 엄마 소영(이지은)과 다툰다. 왜 책임질 수 없는 아이를 낳았고, 또 버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수진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하는 속상함이 묻어있다. 사실 수진이 아니었으면 소영의 아이는 생명이 위험할 뻔한 순간도 있었다. 아이의 엄마인 소영과 아이를 구하고 싶은 수진은 방향이 다를 뿐,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마음만은 같다.
사실 수진은 타인을 걱정하는 마음이 브로커가 되는 방법? 크면서도 티내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할 뿐이다. 그녀는 소영과 다투고 다친 그 날, 남편의 전화를 받고 눈물을 흘린다.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지만,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의 목소리에 참았던 감정이 터졌을 테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종종 떠올리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잘 해내고 싶은 일이 예상치 못하게 브로커가 되는 방법? 꼬일 때, 마음이 앞서 진심을 전달하지 못했을 때의 속상함을 정확하게 짚고 위로해주는 느낌이었다.
타지에서 홀로 견디는 밤
이 영화를 미리 봤으면 그 날, 부산에서 큰 위로가 브로커가 되는 방법? 되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영화가 개봉하기 전인 2020년이었던 당시엔 인생이 잔뜩 꼬여버린 소영이 그랬듯, 차라리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어쩌자고 이런 일을 맡고 친구까지 오게 했을까. 책임감과 부채감이 뒤엉켜 후회가 무성했다. 다음날 팀원들을 만나기 어색한 마음에 걱정이 들기도 했다. 저렴하게 예약한 숙소는 바로 아래층에 유흥시설이 있는지 흥에 겨운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그 소리에 더 서글프고 우울한 밤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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